Topic 1 : Theology/1-1 Christian History

3.2. 종교개혁운동을 알아보자! 4탄

얼룩말 옆 기린 2017. 9. 22. 16:26

 오늘은 지난 포스팅에서 예고한 대로 종교개혁운동의 민주적 성격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개혁 운동은 성경과 예배, 설교를 중시했어요. 이것은 모든 신자가 성경에 접근하고, 예배에 참석하고, 그리스도교의 교육을 받도록 하려는 것이었어요. 이런 의도만 보아도 종교개혁운동이 민주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탄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이러한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학문을 위한 언어였던 라틴어를 고집해서 쓰기보다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자국어를 사용해서 모든 신자가 성경과 예배, 설교를 환히 이해하도록 했습니다.

 또 마르틴 루터는 '전 신자 제사장주의'를 주창하며 모든 신자가 성직자와 같은 역할을 감당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성직자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성직자란 교회 내에서 가르치는 봉사를 하도록 성도들이 인정해준 사람으로 사람들에 의해 선출된 공직자와 같은 직분임을 확인합니다. 그 때문에 성직자가 본분을 다하지 못한다면 선출을 취소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이로 인해 성직자들은 더이상 신자들에게 여러모로 뻐길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ㅎㅎ

 루터의 '전 신자 제사장주의'는 일반 신자들에게 의무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모든 신자가 성직자이기 때문에 모두가 성경을 읽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더 나아가 성직자이기 때문에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렇죠! 성직자는 성경을 읽고 성경을 해석해서 신자들에게 전해주어야 하니까요! 성경을 읽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석까지 할 줄 알아야 성직자이죠!
 누군가는 '전문교육을 받지 않은 일반인들이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느냐'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앞선 포스팅에서 성경의 '성경의 명료성'(누구든지 성경을 읽으면 특별한 도움 없이 구원에 이르는 핵심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개념.)
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2017/08/30 - [Topic 2 : Theology/2-2 Christian History] - 3.2. 종교개혁운동을 알아보자! 2탄

 그렇다면 일반 신자들이 성경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발견할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의 차이는 어떻게 될까요? 루터는 이에 대해 성경에 비추어 교회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참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가톨릭교회는 교종(교황)과 같은 영적 권위로부터 내려오는 가르침대로 성경을 읽고 해석해야 한다고 하지만 루터는 이러한 장벽을 허물어버리고 도리어 성경과 다른 것은 올바르게 회복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 손으로요? 바로 일반 신자의 손으로! 이런 주장은 정말 획기적이고 혁명적인 것이었습니다. 당시 일만 하고 성직자라면 식자층이기에 머리를 굽히며 살았을 사람에게 교회의 기준을 주고 기준에 맞게 개혁하자고 초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앞선 포스팅에서처럼 성경을 라틴어가 아닌 자국어로 번역하는 일에 루터 자신도 참여합니다.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은 독일 문학 발전에도 큰 역할을 할 정도로 문학적으로도 뛰어난 성과였습니다.
 이처럼 종교개혁운동은 교회에서조차
성직자들에게 밀려나 있던 신자들을 교회의 중심으로 초대하는 민주적 운동이었습니다.

 성경 번역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윌리엄 틴데일(1492-1536)이 헬라어 신약성서를 영어로 번역했습니다.(1526년) 여기서 '사제'로 번역되어왔던 단어를 '장로'로 바르게 번역했고, '교회' 또한 '회중'으로 번역합니다.

 그 결과, 전통적인 교회론이 흔들리게 됩니다. 라틴어 성경에서는 가톨릭교회의 체제에 맞게 조금씩 의역해놓거나 첨가한 부분들이 있었는데(지난 포스팅 참조) 그러한 것들이 모두 디폴트(초기화)되어 가톨릭의 민낯이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이에 가톨릭은 번역 작업에 대해 반역 행위라고 규탄합니다.

 이렇게 자국어 성경이 등장하고 금속활자의 등장으로 인쇄기술이 향상되어 보급까지 늘어나자 닥쳐온 혼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가톨릭에서 우려하던 것이었습니다.


바로, 성경 해석의 다양성.


 성경을 자국어로 읽고 성경이 가진 명료성 때문에 모두가 이해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읽는 사람마다 해석이 달라지는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냐는 것이죠. 여기서 사람들은 서로 해석한 부분을 나누다가 의견이 분분한 것을 보고 도리어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두 눈을 끔뻑거리며 말했겠지요.


도대체 정답이 뭐야?


 루터는 이러한 혼란에 대응하기 위해 '소요리문답'을 만들어냅니다. 기본적인 신앙의 틀을 제시하면서 이 틀로 성경을 해석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었죠. 장 칼뱅(존 칼빈)은 당대 최고의 유명세를 누렸던 '기독교강요'를 출간해 냈습니다. 참 따듯한 문체로 기독교에 관해 설명해줍니다. 이렇게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이 무엇이 기독교인지 알게 된다면 구원과 같이 본질적인 부분에서는 같은 방향의 해석을 내놓게 될 것이었습니다.


마르틴 루터의 소요리문답서(1529년) 사진 출처 : 뉴스파워.

 개신교는 각 해석의 다양성 속에서 가톨릭처럼 답을 정해주는 어떤 권위를 갖기보다, 이런 다양성을 인정하기로 합니다. 다만 성경의 진리, 구원에 관한 문제와 같은 본질적인 부분은 루터의 '소요리문답', 칼뱅의 '기독교강요'와 같은 교리서들을 통해 일치를 이루도록 하고, 본질을 벗어난 문제에 대해서는 이견을 허용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개혁운동에서 바라본 성례를 가지고 올게요!
 환절기인데 감기 걸리지 않도록 유념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본 포스팅은 『알리스터 맥그라스 기독교의 역사』를 읽고 쓰는 글입니다. 부족한 내용은 여러 서적과 사전을 참고합니다.

 포스팅 제목에 있는 번호는 본서의 챕터 번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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