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종교개혁운동을 알아보자! 6탄(완결)
제가 유럽에 아름다운 성당들을 더이상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어요. 함께 공부하던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저 아름다운 성당들이 어떻게 지어진 줄 알아?"
"몰라."
"부를 축적하는 일이 죄악시되던 중세 말에 교회를 지을 돈을 내면 천국에 가게 된다고 그러더래."
"누가, 누구한테?"
"교회가 부자 상인들한테"
저는 이 얘기를 듣고 상인들의 삶을 헤아려 보았어요.
원래 가문은 기사 가문인데, 새로운 화약 무기들 때문에 칼로 싸우는 것은 옛말이 되어버린 거죠. 그래서 한 남자는 자신의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가업을 잇지 않고 다른 일로 눈을 돌립니다. 그런데 그 당시 신항로가 개척되고 그러면서 사람들이 무역으로 돈을 어마어마하게 벌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무역을 바로 시작하기는 어렵고, 상인이 되어서 무역품들을 유통하는 일이 새 출발로 적당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부를 축적하는 일이 너무나도 세속적으로 느껴지기만 합니다. 먹고살려고 하는 일인데,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하는 일인데, 교회에 다녀오기만 하면 마음이 이토록 무거워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 건축을 위해 헌금을 할 수 있고, 헌금한다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군.'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는 자신을 짓누르던 큰 부담에서 해방된 느낌이었습니다. 그는 이제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세속적인 일을 하며, 마음에 큰 부담을 안고 살았을 무지한 백성들이 보였습니다. 그 사정이 너무나도 딱하게 느껴져서 그들이 가진 부담을 어떻게든 덜어주고, 그들에게 구원의 기쁨을 줄 수 있다면 좋겠는데 중세 교회는 그들을 교묘히 이용했습니다. 구원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교회 건축을 위한 헌금을 요구한 것입니다. 너무나도 화가 나지 않나요? 인류의 모든 세대가 혀를 내두를 정도의 장식들도 그런 한 맺힌 돈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은 저에겐 가증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지금 보신 것처럼 중세 시대에는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을 뚜렷하게 나누어 귀천을 따졌습니다. 그러면 종교개혁 시기에는 어땠을까요? 혹시 지난 포스팅에서 다뤘던 '전 신자 제사장주의' 기억나세요? 마르틴 루터가 모든 그리스도인은 제사장이라고 주장하던 것 있잖아요.
2017/09/22 - [Topic 1 : Theology/1-1 Christian History] - 3.2. 종교개혁운동을 알아보자! 4탄
이런 루터의 건강한 주장 덕분에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의 어떤 간극이 서서히 좁혀지고 있었습니다. '전 신자 제사장주의'에 의하면 모든 성도는 모두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았고, 이러한 부르심에 응하는 방법은 각자에게 맡겨진 생업, 일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책임감 있게 살아가는 것으로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과의 구분이 모호해지게 되는 것이었죠. 이처럼 루터 덕분에 '소명'이라는 단어는 더이상 세속과 단절한 수도사 이미지 대신 일상에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부르심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영향을 받은 윌리엄 틴데일은 주석을 쓰던 중에 이렇게 말합니다.
'설거지와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일'이 분명 서로 다른 일이지만 그래도 둘 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이기에' 본질상 아무런 차이도 없다.
존 칼빈은 이러한 개념을 좀 더 확장합니다. 칼빈은 노동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영광스러운 도구로써 사용되는 사람들의 특권이자 의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번영만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로써 이 세상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더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동을 하는 것입니다. 1
당시 가톨릭교회는 여전히 성과 속을 구분하는 중세의 직업관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종교개혁가들은 진보적인 노동관을 제시했습니다. 종교개혁가들의 이러한 생각의 전환은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요?
16세기 후반, 벨기에의 플랑드르라는 지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 지역에서 프로테스탄트가 봉기를 일으켜 200년 동안 가톨릭과 개신교가 분리되어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개신교 지역은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지만, 가톨릭 지역은 경제가 점점 침체하고 생산이 저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당시 경제를 이끌어나가던 사람들과 집단들 대다수가 칼빈주의자였다는 사실은 이러한 개혁가들의 진보적인 노동관이 자본주의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막스 베버(1864-1920)
여러분도 잘 아시는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도 이러한 현상을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논문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칼빈주의와 자본주의의 케미가 굉장히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가 칼빈주의를 어떻게 분석해 놓았는지 함께 볼까요?
소유를 거리낌 없이 즐기는 것에 대해 힘써 반대하고, 소비 특히 사치스런 소비를 억제하면서 재화획득에 대한 전통적 윤리의 장애로부터 심리적 부담감을 떨쳐버려 더 이상 이윤추구를 죄악시하지 않고 도리어 그것을 곧 신의 의도라고 합법화시켰다. 2
'재화획득에 대한 전통적 윤리의 장애로부터 심리적 부담감을 떨쳐버려' 이 부분이 어려울 수도 있으실 텐데 이건 우리가 앞서 살펴봤던 것처럼 중세의 노동관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중세의 노동관에서는 노동이 세속적이기 때문에 천한 일이라고 여겨서 사람들에게 부담감을 주었지요. 이러한 부분을 베버가 아주 날카롭게 본 것입니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1904)
여러분, 노동하는 것이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는 거라고 하잖아요. 그러면 노동을 하는 동안은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중인 건데, 모든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용하고 계시는 그 신성한 시간에 누가 비리를 저지르고, 속임수를 쓰고, 게으름을 부릴 수 있겠어요. 당연히 칼빈주의자들은 근면하고, 정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나온 자본을, 임금을 허투루 사용하지 않고 검소한 생활을 합니다. 이런 사람이 부자가 되지 않는 게 이상한 것 아닐까요?
이런 정신을 본다면 개혁가들의 사상이 자본주의와 환상적으로 어울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개혁가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고, 프로테스탄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풍요를 누리는 것은 지금까지 살펴 본것처럼 정직하게 살아가면 뒤따라오는 결과였습니다.
다음 포스팅부터는 개혁가들을 주제로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추운 날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본 포스팅은 『알리스터 맥그라스 기독교의 역사』를 읽고 쓰는 글입니다. 부족한 내용은 여러 서적과 사전을 참고합니다.
포스팅 제목에 있는 번호는 본서의 챕터 번호입니다 :)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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