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ic 1 : Theology/1-1 Christian History

3.3. 마르틴 루터 형님의 종교개혁 2탄. '면벌부(면죄부) 이야기'

얼룩말 옆 기린 2017. 12. 17. 21:42

 오와... 어젯밤에 진짜 추웠어요. 점점 겨울이 무르익고 있어요. 달력을 보면 이제 곧 2017년의 마지막을 알리는 12월이 며칠 남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포스팅에서 법률가가 되려던 루터가 어떻게 수사가 되었는지 알려드리기로 했지요!
 아래 링크된 영상을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http://blog.naver.com/philosophy78/130072054485

 루터는 1505년부터 에르푸르트에서 법학 공부를 시작하려고 했습니다. 어느 날, 집에 갔다가 다시 에르푸르트로 돌아가던 길에 영상에서 보신 것처럼 비가 오는 질척한 길을 루터가 걷고 있었습니다. 어떤 것도 하늘에서 퍼붓는 비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수가 없었습니다. 무섭고 두려운 밤이었습니다. 번개가 치고 천둥이 칠 때마다 루터는 겁에 질렸습니다. 저 번개가 눈앞에 보이는 나무 위로 떨어지기도 하는데, 그곳은 곧 지나쳐야 할 길에 있던 나무였습니다. 도망칠 곳이 없습니다. 어디로 가든 그곳으로 가는 길에 벼락을 맞고 죽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여러분도 이런 두려움에 사로잡혀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는 군 생활 중에 새벽예배에 참석하려고 밖으로 나갔을 때, 수많은 별을 보고 바닥에 주저앉은 경험이 있습니다. 열었던 문을 붙잡고 그냥 주저앉아 있었는데, 그때 느꼈던 두려움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별이 선명하게 빛날수록 이 별들이 저를 향해 한 번에 쏟아질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또, 어느 날은 밤길을 걷다가 선명히 빛나는 별 하나가 정수리 위로 왔을 때, 그대로 떨어져 저를 소멸시킬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었어요. 이렇게 자연이 무서울 정도로 크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루터도 그러했을 겁니다. 생각해보세요. 번개는 사람에게 내리치기도 합니다. 스리랑카에서는 길을 가다 보면 종종 이런 시체들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두려움 속에서 루터는 광부들의 수호성인인 안나의 이름을 부르며 목숨을 살려준다면 사제가 되겠다고 서원합니다. 아마도 여러분들은 루터가 다른 성인이 아니라 광부들의 수호성인을 찾았는지 궁금해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그의 아버지가 광산업을 하시는 분이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루터는 광부들이 그들의 수호성인인 안나에게 기도하는 것들을 쉽게 보고 자랐을 것입니다.
 이렇게 목숨을 건진 루터는 자신이 서원한 대로 사제가 됩니다. 위에 첨부해드린 링크에서 보면 수사가 되려는 루터가 아버지를 만나는 장면이 나오지요. 거기서 루터가 고개를 숙이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완고한 아버지의 뜻을 거슬러 수사가 되다니! 아마 아버지는 루터가 법률가가 되어서 부족함 없이 다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을 꿈꿨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루터는 에르푸르트 대학에서 1512년 신학박사 학위를 받게 됩니다. 이 학위로 당시 신설된 비텐베르크 대학의 성서학 교수로 임용되게 되었어요.

 비텐베르크. 거긴 아주 격전지였죠. 먼저 비텐베르크에서 교수가 되고 5년 후인 1517년 10월 31일. 일이 벌어집니다. 당시 가톨릭교회는 베드로 성당 건축 기금을 모으기 위해 면벌부를 팔고 있었습니다.
 면벌부에 대해 설명을 해드릴게요. 가톨릭 신자가 죄를 범하게 되면 고해 신부에게 가서 고해합니다. 그러면 고해 신부는 그 사람에게 보속행위를 요구하게 됩니다. 죄를 뉘우치는 것에 대한 어떠한 반성 행위 또는 죄에 대한 일종의 벌입니다. 그러니까 가톨릭교회에서는 죄와 벌을 따로 보고 있는 것이지요. 죄는 고해를 통해 용서를 받지만, 벌은 그대로 남아있어서 보속행위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이 죽은 후에 연옥에서 벌을 모두 받고 천국으로 간다는 것이죠. 이런 벌은 보속행위뿐만 아니라 '대사'라는 제도로 면제될 수 있었습니다. 일종의 특사 같은 것이었죠.

1517년 10월 31일.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는 루터.

 당시 이런 대사의 특권을 면벌부 판매를 통해 베푸는 것이었습니다. 루터가 보기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그는 면벌부 판매에 대한 95개조의 반박문을 발표합니다. 누구는 이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문이나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또는, 자신이 재직하던 대학 정문에 게시했다고 하지만 그의 동역자이던 필리프 멜랑히톤이 비텐베르크 만인 성자 교회 문에 게시했다고 거론합니다. 하지만 이런 증언이 있음에도 의견이 분분한 것을 보면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음은 95개조 반박문 일부입니다. 함께 보시면 루터가 어떤 입장이었는지 잘 알 수 있으실 겁니다.

20. 따라서 교황이 ‘모든 벌의 완전한 사면’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경우에, 그 말의 의미는 사실상 ‘모든 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에 의해 부과된 벌만을 뜻하는 것이다.

22. 사실상 교황은 연옥에 있는 영혼에게 어떤 벌도 면제해 주지 못한다. 교회법에 따라 현생에서 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27. 헌금 상자에 던져 넣은 돈이 짤랑 소리를 내자마자 영혼이 연옥에서 벗어난다는 설교는 단지 인간이 지어 낸 이야기일 따름이다.

32. 면죄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확실하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그런 내용을 가르치는 사람과 함께 영원히 저주받을 것이다.

36. 진심으로 회개하는 기독교도는 누구나 면죄부가 없더라도 죄와 벌에서 완전히 면제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

40. 진정으로 회개하는 기독교도는 자신의 죄에 대한 벌을 달게 받는다. 하지만 면죄부의 혜택으로 인해 벌에 대한 의식이 해이해져서 벌을 받지 않으려고 한다.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해도 최소한 그런 빌미를 제공한다.

43. 가난한 자를 도와주고 필요한 자에게 빌려 주는 행위가 면죄부를 사는 행위보다 훨씬 선한 일이라는 점을 기독교도에게 가르쳐야 한다.

46. 재산을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지 못한 자라면 자신의 가족을 위해 넉넉하게 저축해야 하고, 결코 면죄부 때문에 재산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기독교도에게 가르쳐야 한다.

50. 만일 교황이 면죄부 설교자들의 강매 행위를 안다면, 그는 자신의 양들의 가죽과 살과 뼈로써 성 베드로 대성당이 바실리카 양식으로 세워지기보다는 차라리 그것이 불태워져서 재로 변해 버리는 편을 선택할 것이라고 기독교도에게 가르쳐야 한다.

51. 면죄부를 파는 행상인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 돈을 빼앗긴 수많은 사람들에게, 교황은 바실리카 양식의 성 베드로 대성당을 팔아서라도 자신의 돈으로 갚아 주고 싶어 할 것이라고 기독교도에게 가르쳐야 한다.

71. 교황의 면죄부에 관한 진실에 맞지 않게 말하는 자는 파문당하고 저주받게 해야 한다.

72. 하지만 면죄부 설교자들의 욕망과 방종에 대항하는 자는 축복을 받게 해야 한다.

76. 역으로, 교황의 면죄부는 죄가 있는 한 아무리 미약한 죄라 할지라도 제거할 수 없다고 우리는 주장한다.

82. 그 실례는 다음과 같다. ‘만일 교황이 교회 건설에 소요되는 파렴치한 금전을 모으기 위해 수많은 영혼을 구원한다면, 어찌하여 거룩한 사랑과 그 곳에 있는 영혼들의 절박한 필요를 위해 연옥을 비우지 않는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매우 올바른 일이지만, 금전을 모으는 것은 매우 하찮은 일이다.’

86. 또한, ‘오늘날 최고의 갑부인 크라수스의 재산보다도 훨씬 많은 재산을 소유한 교황이 가난한 신자들의 돈 대신에 자신의 돈을 들여서 바실리카 양식의 성 베드로 대성당을 짓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87. 또한, ‘완전한 회개를 통해 사면과 신의 은총을 충분히 누릴 권리를 이미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교황은 무엇을 사면하거나 교부한단 말인가?’

90. 평신도들이 제기한 매우 신랄한 반론에 대해 강제로 억압하면서 타당한 이유를 들어 해결해 나가지 않는다면, 교회와 교황은 적들의 조롱거리가 될 뿐만 아니라, 기독교도를 불행하게 만들 것이다.

출처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720351&cid=47336&categoryId=47336

 먼저 20조를 보시면, 교종(교황)이 베푸는 대사는 교회 안에서 교종이 벌을 내린 경우에만 효력이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교종의 권한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교종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죄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 죄에 대한 벌로 보속을 하든, 대사를 베풀든지 그 효력이 인정될 수 없습니다.
 22조를 보시면 교종의 제한된 권위에 대해서 잘 보여주고 있는데, 교종은 연옥에 갇혀있는 영혼들이 받는 벌에 대해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승을 떠난 것에 대해서는 교종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게 가능하다면, 82조를 먼저 볼까요? 만약 연옥에 있는 영혼들의 형벌을 줄여줄 수 있고 그 영혼들을 바로 천국에 보낼 수 있다면, 왜 사랑과 긍휼로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천국에 보내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돈을 받고 그 일을 한다는 것이죠.
 또, 이 당시에는 대사가 면벌부를 통해 이루어져서 벌을 면제받는 개념이 '카더라'매체를 타고 신자들 사이에서 죄 사함을 받는다는 개념으로 변질되게 됩니다. 파리대학의 신학부에서도 이러한 오해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견해를 밝혔지만 정작 교회는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오해를 악용해서 돈을 탐하던 사제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들은 이 오해를 바로잡지 않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루터는 76조에서 교회가 파는 것은 죄 사함과 무관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앞서 32조에서도 면벌부가 구원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금화가 짤랑 소리를 내며 돈궤로 떨어지는 순간,
 영혼은 연옥에서 하늘로 뛰어오른다!

 당시 면벌부로 판매하며 설교로 세일즈를 맡았던 요한 테첼이 내놓은 광고입니다. 이런 테첼의 주장을 납득할 수 없던 루터는 반박문 27조를 통해 이러한 광고가 거짓이라고 주장합니다.
 루터는 이런 면벌부 사태를 보면서 죄를 어떻게 용서받고, 주어진 벌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성경적인 고찰을 해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36조에서 진정한 회개가 신자를 죄와 벌에서 자유롭게 한다고 합니다. 또, 진정한 회개를 통해서 죄와 벌에서 자유로워진 신자들에게 면벌부는 어떤 효력을 발휘하게 되냐며, 면벌부 판매는 말이 되지 않는 처사라고 말하죠.
 이러한 면벌부 판매가 가져올 부작용에 대해서도 40조에서 이야기 합니다. 면벌부를 사서 벌을 해결하려는 사람들의 신앙적 해이가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면벌부를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을 43조와 46조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을 돌보는 일, 가족이 궁핍하지 않게 돈을 잘 관리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가난한 신자들의 돈까지도 면벌부로 착취하고 있습니다.
 루터는 이런 교회의 탐욕에 대해 지적합니다. 50조와 51조, 86조가 그것입니다. 이렇게 교회의 잘못을 지적하는 중에도 루터는 이 일이 교종의 잘못이 아니라, 그 일을 탐욕스럽게 하는 사제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71조와 72조에 보면 탐욕에 눈이 멀어 면벌부를 파는 데 혈안이 된 사제들에게 대항하는 것이 옳다고 이야기하기까지 합니다.
 90조에 보면, 반박문의 타당한 반박에 타당한 답변을 해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신랄한 비판을 퍼붓는 중에도 루터는 교종을 걱정합니다. 타당한 답변이 없다면 교종은 조롱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을 보면, 현대 개신교인들에게 조금 거슬릴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시 루터가 연옥을 부정하지 않았던 것과 교종제도에 대해서 인정하고 있던 점을 들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루터는 교수 사제였어요. 가톨릭교회 시스템 안에서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으려고 했을 뿐입니다. 그가 처음 반박문을 발표했을 때는 지금의 개신교를 만들려는 목적이 크지 않았고, 대신 가톨릭교회 내부 개혁을 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내건 이유도 바른 교회를 만들기 위해 토론해보자는 취지였습니다.

 사실 루터는 1516년 10월 31일, 그러니까 95개조 반박문 발표 정확히 1년 전, 설교를 통해 면벌부 판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고해 성사에 대해 가톨릭교회가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었습니다. 이후에 1517년 2월에도 설교를 통해 같은 뜻을 내비쳤습니다. 하지만 비즈니스로만 생각해본다면 이런 논쟁으로 잘 팔리고 있는 면벌부에 흠집을 낼 필요가 없잖아요. 그 결과,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면서 공개토론을 요청한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에 나오게 된 95개조의 긴 반박문.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 날을 종교개혁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 반박문은 당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술의 개발로 대량 인쇄되어 귀족들과 신자들에게 퍼져나갔습니다. 누구라도 이 반박문을 읽는다면, 교회에 대한 불신을 갖지 않을 수 없었겠죠? 이 사태에 대해 교회가 어떻게 대처했는지 다음 포스팅에서 알아보도록 해요.

 추위가 점점 기승을 부리고 있어요. 부디 감기 조심하세요.

 본 포스팅은 『알리스터 맥그라스 기독교의 역사』를 읽고 쓰는 글입니다. 부족한 내용은 여러 서적과 사전을 참고합니다.

 포스팅 제목에 있는 번호는 본서의 챕터 번호입니다 :)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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