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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 옆 기린
3.2. 종교개혁운동을 알아보자! 5탄 본문
참 오랜만에 다시 포스팅하게 되었어요.
개인적으로 참 정신없는 한 달을 보내고 무사히 다시 돌아왔어요. 바로 전 포스팅에서는 환절기에 건강 유념하시라고 인사를 드렸는데 이제는 입동도 지나고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어요.
또 며칠 전 10월 31일이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일이었지요. 그 날엔 어딘가에서 편안히 포스팅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행사와 여러 각오를 접하면서 종교개혁 정신에 대해 더 생각해보게 되었고, 제 삶에서 개혁이 필요할 만한 부분들을 찾아보며 의미 있는 시간을 잠깐 가져보았습니다.
자 이제 다시 시작해 볼까요?
중세에 스콜라주의는 신학과 관습을 통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 초기 기독교는 신학이라는 체계가 중세보다 체계적이지 못했을뿐더러 초대교회로부터 이어온 관습들과 신학의 연관성에 관한 관심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학과 관습의 통합 과정에서 규정된 것 중 하나가 대표적으로 7성례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성례가 어떤 기준으로 선택되었다고 생각하세요?
중세의 탁월한 신학자인 페트루스 롬바르두스는 "성례는 그것이 상징하는 것과 유사성을 갖고 있다."라고 말하며, "어떤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는 표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 은혜를 보여주는 형태로서, 그것이 그 은혜의 이미지를 갖고 있고 그 은혜의 원인으로 존재한다면 그 어떤 것을 성례라 부르는 것이 적절할 수 있다."라고 합니다.
이러한 정의를 가지고 롬바르두스는 7성사(성례)를 규정했는데, 그 성사는 각각 세례, 견진, 성체(성찬), 혼인, 고해, 성품(신품), 병자(종부)성사입니다. 개신교회를 다니시는 분들이 생소해 하실만한 성사는 견진성사와 성품성사, 병자성사일텐데, 설명해드릴게요.
견진성사는 세례를 받은 신자의 믿음과 신앙의 성숙을 위해 안수하고 이마에 기름을 바르는 의식입니다. 성품성사는 교회가 사제와 부제에게 사목을 맡기는 성사로 이를 통해 주교, 사제, 부제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병자성사는 야고보서 5장 11절 말씀("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에 근거를 두고 위급한 환자의 고통을 덜고 구원을 구하는 성사입니다.
존 칼빈(1509-1564)
이렇게 12세기에 정의한 성례는 종교개혁 시기까지 오랫동안 이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대표적인 종교개혁가인 존 칼빈은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합니다. 그의 주장은 '하나님만이 성례를 제정하실 수 있다'라는 것이죠. 그 때문에 사람이 만든 성례는 모두 성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성례는 세례와 성찬만 남게 됩니다.
칼빈은 그의 대표작인 기독교 강요를 통해 가톨릭에서 주장하는 7성례의 문제점들을 논리적으로 제기했습니다. 예를 들면, 그는 견진성사(세례를 받은 신자의 믿음과 신앙의 성숙을 위해 안수하고 이마에 기름을 바르는 의식)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기름을 구원의 기름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 구원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왕국에 참여하지 않는다. 1
견진성사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칼빈 당시에는 기름이 물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물로 베푸는 세례보다 더 큰 효력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직접 받으셨던 세례보다,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 중 하나인 세례를 베푸는 일보다, 자신들이 스스로 제정하여 베푸는 견진성사가 더욱 중대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 성사로 구원이 완성된다고 믿는 것은 예수님이 제시한 구원의 길이 부족하여 후대의 교회가 견진성사라는 성례로 보완한 모양이 됩니다. 이러한 교회의 그릇된 성례관을 칼빈이 지적한 것입니다.
또 성찬에 대해서도 가톨릭과 개혁가들의 주장이 엇갈렸습니다. 먼저 가톨릭은 화채설(transubstantiation)을 주장합니다. 화채설은 성도가 받는 빵과 포도주가 각각 실재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근거로 마태복음 26장에 등장하는 성만찬을 들 수 있습니다.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장 26~28절.
하지만 어떤 초자연적인 경험을 제외하고서, 성도들이 성찬을 하는 동안 예수님의 몸과 피를 볼 수 있었을까요? 성도들은 자신이 받아든 빵이 예수님의 실재 몸이 아닌 것을 알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주장이 가능했던 것일까요?
이들은 어떤 우유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어떠한 존재의 본질을 흐릴 수 없는 어떤 성질을요. 예를 들어 설명한다면... 오. 이게 비슷하겠네요. 학교 다닐 때, 비 온 다음 날 축구를 하면 물웅덩이에 공이 빠지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러면 누군가 드리블을 하기 위해 그 공을 맨땅으로 다시 굴려 가며 축구가 계속됩니다. 그런데 이때, 흰색이었던 공에 물이 묻고 그 위에 흙이 덮여서 얼룩진 모습으로 보입니다. 보이는 모양은 얼룩 모양이어도, 흙이 털리고 나면 곧 본래의 모습을 보여줄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그 공을 흰 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흙은 흰 공의 본질을 훼손할 수 없습니다. 이때, 흙이 우유성을 띄게 되는 겁니다.
다시 화채설로 넘어와서, 이 빵이라는 것은 우리가 보기에 빵이지만, 그 본질은 예수님의 몸이고, 그 본질이 빵이라는 비본질적인 것으로 훼손되지 않기에 그 빵이 충분히 예수님의 몸이라고 믿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라고 생각하는 로마교회는 성찬성사를 진행하던 중에 예수님의 피인 포도주를 쏟는 일들이 발생하자 13세기부터 일반 신자에게 포도주를 분잔하지 않고 성직자들만 포도주를 받게 됩니다. 이렇게 불완전한 성찬은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개혁가들에 의해 회복됩니다.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가 하나 생각납니다. 가톨릭 사제가 신자의 가족이 입원한 병원에 방문했다고 합니다. 신앙의 회의를 하는 병자는 임종을 앞두고 있었고 그를 위해 성찬성사를 하는데, 포도주에 적신 빵을 주었더니 그 환자분이 그것을 병실 바닥에 내던졌다고 합니다. 그러자 사제는 먼지가 묻은 그것을 소중히 주워 자신의 입속으로 넣었다는 이야기였는데, 이야기의 진위를 떠나 화채설에 대해 잘 설명해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로마교회는 화채설을 주장했지만, 루터파는 빵도 존재하고, 예수님의 몸도 함께 존재한다는 공재설을 주장합니다. 개혁가 츠빙글리는 성찬은 단지 예수님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것이기에 예수님의 실재 몸과 피와는 관련이 없다고 상징설을 주장하는데, 이는 가톨릭의 주장과 완전히 반대된 주장이었습니다. 개혁가 존 칼빈은 성찬 시 빵과 포도주에 그리스도께서 영적으로 임재하신다고 주장했고 우리는 이것을 영적임재설이라고 부릅니다.
개신교에서 화체설과 공재설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 중 하나는 이것입니다. 앞서 성찬의 근거가 되는 마태복음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아직 살아계실 때 그 빵과 포도주를 자신의 몸과 피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은 그대로 있는 상황에서 빵과 포도주를 자신의 몸과 피라고 하셨다면, 당시 예수님께서 잡으신 그 빵들은 실재의 몸과 피일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칼빈의 계보를 따르는 개혁교회는 성찬 시 빵과 포도주에 그리스도께서 영적으로 임재하신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례에 대한 로마교회와 개혁가들의 입장을 살펴보았습니다. 세례와 성찬을 제외한 다섯 가지 성례에 대한 논리적인 비판에 대해서는 존 칼빈의 기독교강요 4권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간혹 제 포스팅을 보시고 가톨릭에 대해 너무 부정적으로 글을 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하지만, 제가 그 당시의 1차 저작들을 찾아보면, 개혁가들의 비판은 더욱 날카롭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당연히 로마교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편파적인 개혁가들의 이야기는 들으면 안 되지!"라고 말씀하시는데, 루터, 칼빈 등 우리가 알고 있는 개혁가들의 대부분은 가톨릭 사제들이며 학자들이었습니다.
한 가정 안에서도 가정의 어떤 문제를 놓고 의견 차이가 생기기 마련이고, 원만한 합의와 존중이 없다면 집안 망신 시키는 일이 발생하곤 합니다. 종교개혁도 교회 안에 있는 곪은 문제들을 꺼내 바로잡자던 호소들을 어떤 권력이 무시하고 억압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 곪은 문제들과 억압에 대해서는 교회사뿐만 아니라 일반 역사를 통해서도 쉽게 목격할 수 있는 객관적인 사실임을 먼저 인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모든 것을 인정하고, 오늘날 신랄한 비판을 받는 교회를 보는 저는 부패의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남아있는 순결한 교회를 사랑하시며 이끌어 가시는 사랑의 목자이신 하나님이 보이기에 계속해서 교회를 사랑하고, 아픈 교회의 역사도 내가 사랑하는 교회의 역사임을 인정하며 안고 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함께 갈 수 있다면, 우리는 과거 교회의 역사로부터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종교개혁이 자본주의에 미친 영향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오늘 밤부터 날씨가 추워지고 있습니다. 건강 유념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본 포스팅은 『알리스터 맥그라스 기독교의 역사』를 읽고 쓰는 글입니다. 부족한 내용은 여러 서적과 사전을 참고합니다.
포스팅 제목에 있는 번호는 본서의 챕터 번호입니다 :)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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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trans. 문병호 (서울: 생명의말씀사, 2009), 4. 19. 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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