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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 옆 기린
그 남자의 이별. 본문
나도 잘 모르겠다.
이런저런 자리에서 누군가의 사랑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어떻게 보면 어려운 이야기이다. 내 연애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한다고 생각하면 누군가 자신의 연애가 잘 되어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러니까... 나는 이렇게 행복한 연애를 하고 있다고 자랑하듯 이야기할 때, 그들은 술을 마시지 않아도 무언가에 취한 듯 연인의 사진까지 내 앞에 들이미는 것이다.
그날도 이런 연애 이야기가 시작되나 싶었다. 지금 돌아보면 옹졸했다고 생각되지만, 솔직히 그때는 그가 자신의 연애에 대해 이야기 하려던 찰나였기 때문에 엄청 힘든 이야기를 내놓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나의 바람은 불행히도 어떤 운에 의해 짓밟힌 건가 싶었다. 그도 똑같이 연인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런 그를 보았을 때, 얼굴에 묻어난 표정은 그의 연애가 짧지 않았음을 알 수 있을 만한 표정이었다. 그의 연인의 사진을 보면서도 그 사진이 찍히던 순간에 일어났던 일들을 회상하는 듯 했다. 추억들이 그를 껴앉고 그는 안락함에 젖어 편안함에 그 사진을 보았으니까.
이런 순간을 맞이한 사람이 할만한 이야기는 이것뿐이다.
"참 미인이시네요."
그렇지 않은가? 이토록 애절함에 젖어 연인의 사진을 함께 바라보는 그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이뿐 아닌가. 하지만 그는 별 반응이 없었다. 그가 다시 사진을 가져가면서 표정이 정리되는 순간, 보통과는 다른 사연을 듣게 될 거란 예감이 들었다.
그는 뜨거운 커피를 조심스럽게 홀짝이더니 충분히 달궈진 커피잔에 자신의 찬 손을 감싸고 있었다.
"아쉽지만, 모두 끝났습니다."
그의 눈은 그대로 찻잔을 보고 있었고 눈썹만 올라갔다 내려올 뿐이었다. 천천히 시선을 올려 내 눈에 맞추더니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는 얼마 전 3년 조금 안 된 연인과 관계를 마쳤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 자신이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알려주었다. 그토록 가깝게 지냈던 사람과 이제는 영영 모르는 사람처럼 지내야 한다는 생각이 그를 종일 짖눌렀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 했다.
"생각해보세요. 살아오면서 싸운 사람과는 화해하고 다시 잘 지낼 수 있고, 만약에 평생 보고 싶지 않은 상대라면 다시 보지 않는 것이 좋을 테지만 헤어진 연인과는 그리워도 모르는 사람처럼 지내야 해요. 우리가 아직 모르는 사람과는 서로 알아갈 가능성이 있지만, 헤어진 연인과는 내가 가장 잘 아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젠 어떤 가능성도 없는 거예요."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이게 누구나 이별을 하는 사람이라면 각오하는 일이 아닌가. 이런 크고 작은 의미들이 이별을 더욱 아프게 만들어 이별을 이별답게 해주는 것 아니던가.
자기 전에 미리 일기예보를 보고 비 소식이 있다면 자기 전에 연인에게 알려주던 작은 일상들은 비 소식이 있을 때마다 헤어진 연인을 걱정하게 할 거고, 추운 날이 이어질 때마다 유독 추위를 잘 타던 연인의 생각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도 이러한 일들을 겪었다고 했다.
"그렇게 며칠 지나지 않아 제가 먼저 연락을 했어요. 서로 너무 아파하고 있는 것을 느끼고는 제안을 하나 했지요."
그 제안은 이별도 사랑의 과정이기에, 그 과정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도 이런 제안이 어떤 미련에서 온 것으로 생각했는지 그다지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없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이별하는 거예요. 서로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로 돌아가는 과정인 거죠."
그는 이어질 이야기의 실마리를 잡으려는 나를 두고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여사친에게 하던 것처럼 해왔어요. 분명히 관계가 예전과는 달라서 서운한 일들이 발생하죠. 가령, 제 약속이 항상 우선이던 연인에게 이제는 더 중요한 약속이 생겨서 제 약속이 밀릴 수도 있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항상 통화 하던 일을 이젠 이모티콘 몇 개로 생략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서운함을 이별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누구나 생각하던 쓴 이별과는 훨씬 관대한 것이라는 생각에 씁쓸하긴 해도 감사할 수 있지요."
나는 의문이 들었다. 이러한 과정은 헤어진 연인에게도 편안한 일인가. 내 앞에 있는 남자는 자신과 같은 이별을 위해서는 서로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몇 가지 질문이 이어졌지만, 그도 이런 관계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답은 대부분 추측과 예상뿐이었다. 이런 관계가 가능하다는 것이 좀 신선하게 느껴졌다. 다시 미련으로 밀려오는 남은 감정들이 그들을 연인의 관계로 끌고 가지 않을까 싶었다.
"아닙니다. 우리의 관계를 다시 시작하는 것은 우리가 아파온 날들을 아무것도 아닌 일로 만드는 서로에게 아주 무례한 일입니다. 물론 그녀가 이별의 뜻을 내비치긴 했지만, 그것에 동의한 것도 나였습니다. 우리의 관계가 진지했던 만큼 이별에 대해 입을 연 그녀의 용기를 봐서라도 우리의 이별은 성공적이어야 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도 돌아가는 동안 내리는 비를 보며 그녀에게 문자를 보낼 것이다.
'어머, 작가랑 미팅이 끝나고 돌아가는 중인데 비가 오네. 아침에 우산 챙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