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말 옆 기린

알베르 카뮈 '페스트' 본문

Topic 2 : Book/2-2 Novel

알베르 카뮈 '페스트'

얼룩말 옆 기린 2018. 1. 6. 14:15

** 코로나19의 피해가 속히 멈추길 기도합니다 **

 읽다 말 다 하면서 본의 아니게 오래 읽기를 하는 중이다.

 몇 년 전, 메르스가 한창 유행할 때, 나는 메르스와 퍽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메르스 확진자가 있는 병원을 두 곳이나 지나다녔고 그 환자 중 한 명이 자주 이용했다던 버스를 나도 자주 이용했다. 연일 질병의 심각성을 보도했지만, 나는 내 일로 바빴다. 그러다가 그 위험한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데, 정신이 든 것이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이 버스를 이토록 편안히 타왔는지 놀라웠다. 그러나 새삼스러운 충격에도 지금껏 태연하게 타고 다닌 버스에서 갑자기 엉덩이를 털고, 열을 재며 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대신 내가 한 일은 알라딘으로 카뮈의 페스트를 주문한 것이다.

 그 일로 며칠 안에 책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 내 일로 바빴다. 사실 카뮈의 작품답게, 술술 읽히지 않아 답답하기도 해서인지 더 쉽게 잊힌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가 취업의 의욕을 잃은 요즘 내 손에 며칠간 그 책이 붙어있더니, 결국 그 마지막 장까지 눈으로 훑어내고야 말았다.

 카뮈의 '페스트'는 등장인물들이 절망적인 상황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관한 이야기이다. 간단한 줄거리와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을 난잡하게 써보아야겠다.

 프랑스 '오랑'이라는 마을에 쥐들이 죽기 시작한다. 점점 어마어마한 쥐들의 사체가 시를 떠들썩하게 했고, 사람들도 쥐에 관한 이야기로 인사를 나눌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페스트의 전주곡이었다는 것을 그들은 알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아마도 등장인물 중 몇 명은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페스트가 창궐하자, 오랑 시는 폐쇄가 되었다. 아무도 외부에서 들어올 수도, 내부에서 외부로 나갈 수도 없게 되었다. 의사인 주인공 리유('리외', 김화영 번역가는 발음을 고려하여 '리유'로 번역했다.)는 페스트를 막기 위해 다른 등장인물들과 헌신한다. 사실, '페스트를 막기 위한다'라고 말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의심환자들이 오면 그들을 격리하고 페스트인지 아닌지 선고를 하는 면에서, 리유는 의사였는지, 재판관이었는지, 모호해지기도 한다. 그러면 '그랑'이라는 관청직원과 자원봉사자인 '타루'는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를 집계하고 데이터를 만들어나갔다. 이것이 그 무시무시한 죽음 앞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리유는 몸이 아픈 아내를 다른 지역으로 요양을 보내고 어머니와 함께 사는 의사이다. 아내를 보낸 직후 창궐하기 시작한 페스트로 오랑 시에 남아 페스트와 맞선다. 늘어난 업무와 매일 페스트 환자를 돌보는, 감염의 위험이 큰 상황에서도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데 열심을 낸다. 이러한 열심은 재앙에 대한 반항, 저항으로 볼 수 있는데, 파늘류 신부가 페스트는 하느님의 뜻이니,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없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초월적 자세와 대립하게 된다. 이처럼 영웅이 되기보다,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리유는 인간적이다. 정말 피곤할 텐데, 자신이 필요한 곳에서 묵묵히 할 일을 다 해내는 책임감 강한 건실한 인간. 리유. 정말 멋있다.
 타루와 그랑도 이 저항에 동참하게 되는데, 그랑은 좀 어수룩해 보인다. 관청직원인데, 시간이 있을 때마다 '잔'이라
는 연모하는 여인에게 편지를 쓴다. 편지를 쓸 때마다, (작품에서는 편지를 한 통을 완성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적절한 형용사나 단어를 찾기 위해 애쓴다. 쓰고, 고치고, 쓰고, 고치고, 노력한 흔적들이 그의 원고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렇게 어수룩하지만,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정직한 인물이다.
 
타루는 자상한 아버지를 따라 판사가 되려 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토록 자상했던 아버지가 불쌍한 죄인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모습을 보고, 연약한 인간에 대한 연민을 품게 된다. 그 후 판사의 꿈을 접고, 집을 나와 모든 폭력을 반대하는 평화주의 운동가가 되었다. 하지만 페스트가 창궐하자 페스트가 무력한 인간에게 제멋대로 죽음을 뿌리는 것을 보고 폭력적인 재앙에 저항하는 인물이다. 의사 리유와 보건대 일을 함께하며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코타르, 이 인물은 페스트가 창궐하기 전에 기초생활 수급을 타 먹는 가난한 범법자였다. 경찰에 쫓기다가 자살하려고 하려다가 실패한다. 그런데 페스트의 창궐로 자신을 향한 경찰의 압박이 사라지자 페스트가 덮친 상황을 너무나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것도 아주 활기차고 방탕하게.
 내가 주의 깊게 본 등장인물을 소개할 차례이다. 기자 랑베르. 랑베르는 오랑에 취재를 위해 왔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오랑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타지에 두고 출장 왔다가 페스트로 인한 도시 봉쇄 때문에 갇혀버린 케이스이다. 자기는 외부 사람이니 오랑 시에 페스트가 창궐하든 외계인이 나타나든 어떻게든 이 지역을 벗어나 사랑하는 연인이 있는 곳으로 가서 행복한 삶을 이어가는 것이 랑베르의 목적이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페스트에 처절하게 맞서는 동안, 코타르를 통해 암거래하게 된다. 그것은 시의 출입문을 지키는 보초병들에게 돈을 주고 몰래 오랑 시를 탈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거래가 성사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고, 그 시간 동안 보건대를 도와 일하던 랑베르는 오랑을 탈출하기로 완벽하게 준비된 날을 하루 앞두고, 포기한다. 그는 자신도 페스트와 무관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과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각자의 상황에서 처절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을 지각하고, 회피하던 자세를 바꿔 함께 저항하기로 한 것이다.

 오, 책 이미지를 찾다가 좋은 걸 발견했다. 그 장면을 한 번 볼까?
[오늘의 사색] 페스트 - 경향신문

 이러한 인물들이 공포의 도시 오랑에 있다. 죽음과 이별, 고통을 모두 오감으로 느끼고 있다. 공포로 위축되었다가도 이내 그 공포에 적응하는 시민들, 나름대로 특수한 상황을 살아가는 시민들.
 그러는 동안 파늘류 신부가 병명이 알려지지 않은 페스트와 비슷한 병에 걸려 기침을 하다가 죽는다. 성직자로서 의사의 진료를 받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파늘류는 병원에 있으면서도 별다른 치료 없이 십자가를 붙들고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이번엔 그랑이 그 몹쓸 병에 걸리게 되었다. 그랑은 이제 연모하는 잔에게 편지를 써오던 일이 모두 허사가 되었고, 이제 자신은 페스트로 죽게 될 거란 좌절 때문에 공들여 써오던 편지를 불에 태워달라고 한다. 얼마간 고열이 그를 괴롭혔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회복되었다. 이때부터, 페스트 환자들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랑의 회복은 페스트의 후퇴를 알려주는 희망적인 사건이다.
 이러한 내림세에도 보건대에서 일을 하는 리유와 타루는 여전히 바빴을 것이다. 타루는 그런 분주함에 예방 관리를 소홀히 했고, 그 틈에 페스트로 앓아눕는다. 그랑에게 찾아온 기적은 타루를 피해가고 페스트 막바지 기간에 목숨을 잃게 된다. 타루와 절친했던 리유는 그의 죽음 이후, 페스트가 그치고 오랑 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가 되었을 때, 진정 기뻐할 수 없었다.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전쟁터에서 자기 아들을 잃은 어머니에게 종전의 기쁨이 무슨 소용이냐는 것. 더구나, 기쁨에 찬 인파들을 헤치고 사무실에 출근한 리유는 아내가 몇 주 전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결국, 이야기 마지막에 웃는 사람은 랑베르다. 랑베르는 오랑 시의 폐쇄가 풀리자 자신을 찾아온 연인과 행복한 재회의 기쁨을 누린다. 정말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는 그는, 쓴 인내 뒤에 온 달콤한 기쁨을 맛본다.
 이렇게 오랑 시가 언뜻 보기에 축제 분위기로 가득했지만, 오랑에 사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 그들의 죽음과 맞닥뜨려야 하기도 했다. 또, 리유처럼 상실의 아픔 때문에, 부산스러운 행렬로 위로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코타르처럼 시끄럽게 해방을 맞이하는 사람들도 있을까? 코타르는 자신의 집에서 창밖으로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쏘았다. 페스트가 그친 것은 그가 다시 경찰에 쫓기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비롯된 근심이 그가 이런 방법으로 경찰과 맞닥뜨리게 했다. 그가 경찰에 연행되고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그토록 처절하게 싸웠던 리유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누구보다 열심히 싸우고도 아무것도 지킬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다. 이것이 현실 인생이다. 열심히 한다고 항상 행운이 깃드는 것은 아니다.
 당장은 리유의 결말은 이렇게 뭔가 씁쓸하고, 이 씁쓸함에서 어떤 적절한 의미를 찾아내야 할지 몰라서 찜찜하다.

 이야기의 진정한 승자인 랑베르에게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그보다 훨씬 쉬웠다.
 랑베르가 오랑 시를 탈출하려고 분주히 움직일 때, 중간마다 리유와 타루를 만나 탈출 계획의 진척을 이야기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랑베르는 고갤 떨구고 축 처진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때마다 은근히 고소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도시를 탈출하려는 랑베르를
 대하는 리유나 타루의 태도는 진심으로 그의 탈출을 응원하는 듯한 것이다. 자신들은 정말 작정하고 오랑 시 전체에 죽음을 뿌리려는 완강한 재앙의 고집 앞에 칼로 허공을 가르는 것처럼 아득한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그 일에서 쏙 빠지려는 랑베르에게 리유는 행복을 찾아가는 그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랑베르가 허탕을 칠 때마다 고소해 하던 나는 내 몹쓸 심보만 확인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이해한다. 거긴, 정말 전쟁터이다. 응. 전쟁터. 거긴 죽음과 삶의 문제가 걸린 전쟁터였다. 그러니까, 무슨 귀찮은 임무가 주어지고 그 임무 수행에서 빠져보려는 얄팍한 수작이 아니라, 생명이 걸린 문제였다. 물론, 랑베르가 오랑 시를 떠나려는 마음은 생명의 위협에서 기인했다기보다 행복을 되찾으려는 열망에서 비롯되었다.

 이렇게 회피하려는 랑베르가 내 삶으로 들어오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취업하지 않고 빠듯한 가계에 기생하는 나. 가정의 공통된 책임을 회피하고, '이러한 절망은 내 것이 아니오.'하는 내가 랑베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닮은 것이다. 눈앞에 놓인 내 몫의 시련을 회피하고 내가 바라는 어떤 안락을 좇는 모습이라니. 회피자 랑베르를 초월한 이기심이다. 이러한 공감 때문에 회피자 랑베르가 저항가로 돌변하는 순간, 내 안에도 어떤 생기가 솟아 미래를 위한 준비를 시작하게 했다. 그래. 그래서 열심히 대학원 예비과정 중이지.

 이야기를 모두 읽었을 때, 그대로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좀 심오한 어떤 메시지가 있는 것 같은데, 그걸 제대로 이해한 것일까?' 하는 찜찜한 마음이 남았기 때문에, 뒤이어 나오는 해설을 꼭 읽어보아야 했다.
 이처럼 '페스트'는 간단한 작품이 아니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을 통해 그려진 인간상은 궁금증을 끌 만했고, 서로 다른 성격의 사람들이 만나는 장면들을 이야기
를 따라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도 즐거웠다.

 하지만 추상적인 부분에 대한 설명은 명확하게 이해하기 어렵기에 좀 더 사려 깊은 해설이 필요한 책이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페스트는 2차 세계대전을 의미한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을 겪는 카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래 영상을 보았으면 좋겠다.

 그럼 이만.


페스트 - 10점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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