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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ic 4 : Someone's Life/4-2 Life

꺼낼 수 없는

얼룩말 옆 기린 2022. 6. 2. 00:47

 이 세상에 있는 셀 수 없는 많은 글들 중에 네가 이 글을 우연히 보게 될 일은 일은 전혀 없겠지만 네가 여기까지 읽었다면 조금만 더 생각하고 읽어주길 바란다. 그리고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냥 모른 척해주는게 서로에게 적응된 입장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두서없는 글처럼 발길도 분분하다.

 연구 결과를 미리 정해놓고 연구를 시작하는 일에 관해 들은 적이 있다. 진행 할수록 가설이 틀렸음이 보이지만 교묘히 자료들을 이용해 그럴싸한 페이퍼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사업을 따내기 위해 필요한 근거를 만들어내는 거라고. 하도 어이가 없어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타인을 이해하는 데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곤 한다.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를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만 공존해야 한다면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를 위한 수고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관뚜껑이 닫히면 이해가 끝나려나 싶지만 하늘 나라로 보낸 인물도 자식들이 명절마다 모일 때마다 그 이해가 깊어진다. 그런데 쉬이 나 또는 타인에 관해 '이런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놓고 결론에 반하는 명징한 증거들은 거른채 섣부른 결론에 부합하는 단서를 고른다. 이것은 분명 6이었으나 섣부를 결론을 위한 근거로 쓸 땐 9가 되기도 한다.

 결론이 이미 나온 것을 안다. 그 결론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나의 언어에서, 또는 상대의 언어에서 나는 너를 이렇게 생각하고, 너는 나를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괴로운 만큼 너도 괴로울까 싶어 '결론'이라 결론짓지 않으려 더 예민하게 주의깊게, 그럼에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감출 수 있을만큼 감추고 애써 너가 생각하는 너인척 너가 생각하는 나인척 그런척 하고 싶다.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이 때문에 너는 항상 옳을 수 있던 것이다.

 하지만 점잖게 말해 퍽 힘들다. 너가 생각하는 내가 누군지 대면하게 되어서. 그리고 내가 어떤 결과였으면 좋겠다는 너의 '기대'와 너가 결론지은 나의 간극이 심한걸 목격해서. 내가 빠져도 아무런 상관이 없겠다. 진정한 내가 너에게 결론지어진 나를 불러오는 매개물이라면 나는 빠져야겠다. 내가 빠진다면 너는 이 상황를 보고 결론지은 내가 종종 보인 단순한 행위라 생각하겠으나. 사실 너와 나는 애초에 만난 적이 없다.

 여전히 결론을 낼 수 없어 한 마디를 내놓기가 어렵다. 그리고 내 한 마디가 9가 되어 섣부른 결론을 견고하게 해줄까 내놓기 어렵다. 이것도 과정이라면, 진정한 너를 만나러 가는 과정이라면 기꺼이 감수하겠다. 너는 그만큼 어렵다. 시선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감정을 추스르는 일이 점점 어렵다. 쇠잔해지는 나의 소원과 달리 견고해지는 너의 결론을 보면 나의 죽음을 보는 것 같다.

 밤을 지새며 비통하게 절규하기는 바뀐 상황이라면 좋겠다. 내가 너에게 그런거라면 나는 이 결론을 한숨과 함께 무저갱 아래에 보내겠다. 그리고 나의 것이라 생각하던 쇠잔한 너의 소원이 꺼지기 전에 너를 만나러 가겠다.

 입버릇처럼 관계는 선물이라고 했다. 선물은 기쁜 것이기에 나는 그 기쁨을 반드시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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