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말 옆 기린

톰 라이트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 본문

Topic 2 : Book/2-1 Christian Books

톰 라이트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

얼룩말 옆 기린 2018. 1. 8. 07:00

 사도 바울에 대한 새 관점으로 처음 접한 톰 라이트, 협력적 구원이니, 행위 구원이니 하면서 비판을 먼저 들은 것도 사실이다. 그의 칭의론이 정통적 견해와 달라서 칭의에 관한 그의 글에는 주의를 기울이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신학적으로 민감한 논쟁에 참여하기 망설이는 내가 어떻게 이 책을 읽게 되었을까? 이것도 여러 해 전 일이다. 군 복무 중에 휴가를 나와서 서점에 갔다. 딱히 무슨 책을 사러 간 건 아니었지만, 하나님 나라를 주제로 한 책 표지에 자신의 얼굴을 넣은 표지디자인에 넘어가 버렸다. 스스로 합리화하기로는...

 '음... 괜찮아. 나중에 하나님 나라 연구할 때 요긴하게 쓸지 어떻게 알아?'

 지금 답을 하자면, 그러한 연구와 상관없이 읽었고, 하나님 나라 연구에도 좋겠지만, 기독교 세계관이나 기독교 세계관을 기초로 한 어떤 활동의 밑그림을 그릴 때 좋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러고도 한 참 있다가 읽었다. 이렇게 사 놓은 책을 두고 살아왔는데, 중간에 학교 독서 모임에서 수상을 하며, 이 책을 또 선물로 받아 버린 것이다. 그래서 직접 산 책(흠집조차 없는 새 책)을 동기에게 선물로 주었더니, 그 동생 왈, "형, 이거 읽어봤어? 이거 엄청난데?" 하더라. 그게 벌써 재작년 일이니, 나는 지금까지 뭘 해온 것일까? 하하하.

 각설하고 책 얘기를 하자.

 제목대로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할 줄 알았는데, 처음부터 '부활'의 역사성을 설명하는 긴 글을 보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사건은 역사적(객관적인)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현대 인류도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음. 사실, 계몽주의의 냉소적인 태도에 익숙했기 때문에 저자의 확신에 찬 주장에 어리둥절 해졌다.

 '부활이 실제로 일어났음을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게임 끝난 것 아닌가?'

 객관적인 근거를 찾는 합리적인 인류에게 역사적 근거를 들어 예수님의 부활을 설명한다. 그렇지. 그 당시로 현대 의사와 의학 장비들을 보낼 수 없고, 지금 다시 예수님을 모셔다 놓고 MRI를 촬영할 수 없는 노릇이기에, 의학적 근거를 제시할 수가 없는 게 아쉽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한 가장 객관적인 근거는 성경을 제외하더라도 당대 최고의 사가들이 기록한 증언이다.

 이제 충분히 객관적이지 않은가? 의학적 소견에 따라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이 TV에 나와서 그게 벌써 10년도 넘은 이야기라고 회상하기도 하는 세상이고, 과학도 겸손하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 과학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역사적으로 '부활'은 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논쟁할 거리가 어디 있을까.

 여기까지 오면, 계몽주의의 여파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동화를 어쩌면 그렇게 진지하게 설명하느냐.'라는 시선을 가진 분들과 이성적인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 그분들에게 부활의 객관성을 설명한다면, 도리어 그들이 굳게 믿어온 '부활의 허구성'이 탄탄한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의혹' 또는 '당위'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객관성이라도, 신앙으로 초대하는 상황에서 마구잡이로 사용할 수가 없다. 이러한 방법은 자칫 논쟁으로 번지기도 하고, 세상일들이 그런 것처럼 진실은 어디 있는지 모르고 자욱한 먼지 속에서 서로에게 주먹을 날리는 모양으로 보이게 된다.

 하나님과 부활을 인식하는 방법으로 믿음, 소망, 사랑의 단계를 제시한다. 알기 위해서는 일단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믿음으로 부활이 조금 보이게 되면,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하게 될 미래를 소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앎을 위해서는 사랑해야 한다고 한다. 라이트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인용한다.

 '부활을 믿는 것은 사랑이다.'

 연구하는 사람, 즉 앎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신이 연구하는 주제와 이미 사랑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ㅎㅎ 참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사랑의 대상을 알기에 힘쓰지 않는가. 당연하다.

 이렇게 예수님의 부활을 객관적 사실로 밝혀 놓은 라이트에게 계속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게 나랑 뭔 상관인데.'

 아마도 중간에 한 사람과 통화한 것이 이런 질문을 던지게 만든 것 같다. 물론 위 물음에서 '나'는 정말 내가 아니다. 복음을 전해 듣는 논크리스찬을 대변한 물음이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데, 그게 사실이라는데, 딱히 제시할 반론도 없는 사람은 그 사실을 전해주는 사람이 귀찮을 뿐이다. 당장이라도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이유는, '그래서 이게 나랑 뭔 상관인데!'뿐이다.

 그들을 위해서, 그들에게 좀 더 핵심적인 제안이 제시되는지 궁금해서 나는 그들을 대신해 외치고 있었다.

 '그래서 그게 나랑 뭔 상관인데.'

 라이트는 부활이 역사적 사실임을 밝히고, 부활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부활은 육체를 두고 영혼만 부활해서 눈에 보이는 유령처럼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정확히 육체와 영혼의 부활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육체는 이전의 육체와 다른 어떤 영광스러운 모습이기에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도마에게 못 자국 난 손과 창으로 찢긴 옆구리를 만져보라고 했던 예수님은 그 상처를 여전히 가지고 계셨다. 이에 대해 라이트는 영광스러운 부활의 육체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한 표시들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한다. 사실 이러한 설명에 무조건 '아멘!'(동의합니다!) 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신빙성 있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육체를 가지고 승천하셨다. 그러니까 그 영광스러운 육체를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에 계신 것이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것처럼 다시 오실 것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이렇게 '승천'과 '재림(다시 오심)'은 하늘과 땅이라는 공감각 때문에 아래에서 위로, 혹은 위에서 아래로 수직 이동을 하면서 구름을 뚫고 성층권, 중간권, 열권을 통과하시는 주님을 생각할지 모르겠다.
 아, 정확히 해야겠다. 승천하시는 주님을 제자들이 멍하니 보다가 구름에 가려 더이상 볼 수 없게 되었지. 하지만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리적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1세기 유대인들은 하늘과 땅이 아주 가까운 관계에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엷은 막을 통과하면 이르게 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께서는 땅에 있는 우리와 그토록 가까이 계신 것이다. 그리고 성경이 재림을 언급할 때마다 사용하는 단어인 '파루시아'는 신의 현현, 왕이 자신의 나라 어느 지역에 통치권을 가지고 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부활을 믿는 성도들은 어느 날 재림이 이루어져, 주님이 이런 막강한 이미지를 가지고 이 땅에 오실 것을 고대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토록 가까운 하늘에서 주님은 우리를 통치하고 계신다.

 '그래서 그게 나랑 뭔 상관인데.'

 그래 맞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실이랑, 그 부활의 육체가 영광스러운 모습이라는 것이 도대체 나랑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다. 그의 승천이 무슨 상관이고, 재림이 무슨 상관이냐고.
 자, 이제 조금씩 당신에게 이 부활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겠다. 여러 논증 과정은 책에서 확인하길 바라며, 간단하게 알려줄 테니, 잘 따라오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도 그 부활에 참여하게 된다. 우리도 죽은 후에 그 영광스러운 육체로 부활하게 된다고.

 '하, 웃기지 마라. 그러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장례문화가 필요 없겠구먼.'

 No. 여기가 아니다. 이렇게 진실이 보이지 않고 악이 판을 치는, 불의가 가득한 세상이 아니다. 완전한 왕이 다스리는 완전한 나라에서 우리는 부활하게 된다. 부럽지 않은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아 그리고 땡큐, 지금 여기서는 안 믿는 사람과 똑같이 살면서, 속으로는 '이 세상은 중요하지 않아 나중에 부활할 그곳이 더 중요하잖아?'라고 생각하는 기독교인들을 알게 되었어.'

 미안하지만, 그렇지 않다. 조금 긴 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은 선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런데, 아담의 죄로 타락하게 된 후로 이 세상은 보는 것처럼 악이 들어오게 되었지.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 이후로 이야기가 달라진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악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을 왕으로 섬긴다는 뜻이다. 이렇게 막강한 주님이 엷은 막 하나를 두고 나와 가까이 계시며, 통치하고 계신다.
 우리가 부활할 새 하늘과 새 땅은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에 임한다. 뭔가 부족하고 상처 입고, 악으로 가득 차서 처음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린 세계이지만, 이곳에 마치 죽음 직전 십자가에 달렸던 예수님의 육체가 부활하면서 영광스럽게 새롭게 된 것처럼 이 세계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은 최후에 일어날 일이지만, 예수의 부활을 믿는 자들에겐 이 땅에서 새로운 창조를 준비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넘치는 악을 바로잡고, 침묵하지 않으며, 환경을 지켜나가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며, 새 창조가 이루어졌을 때, 우리가 부활했을 때, 보게 될 그 새 나라를 이정표처럼 가리킬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비록 어렵고 불가능해 보인다고 하지만, 우리의 왕은 부활하신 영광의 예수이시다. 그리고 그는 우리를 그냥 두지 않으시고, 자신의 영을 보내셔서 이 일을 효과적으로 도우신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사람은 이렇게 새로운 창조를 위해 이 땅을 아름답게 바꾸는 사람이다. 이 일은 부활의 소망이 있는 우리에게 가슴 뛰는 일이다.

 책에서도 말하는 것처럼, 신앙에 대해 이렇게 말로 누군가를 설득하기는 쉽지 않겠다. 하지만 우리가 부활 소망을 가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떠올리며, 이 땅에서 부조리와 싸우며 살아간다면, 분명 우리의 이야기가 좀 더 설득력 있지 않을까? 그리스도인들이 하나같이 악과 싸우고, 연약한 것을 돌보는 자가 된다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좀 더 설득력 있지 않을까?

 우리가 곳에 임할 새 나라를 바라보며 이 땅에 가득한 부조리와 싸워나가는 구도가 며칠 전에 포스팅한 '페스트'의 등장인물들 같다. 그렇게 리유가 되어, 랑베르가 되어, 타루가 되어, 그랑이 되어 싸워나가야 한다.
 그날, 우리가 부활의 영광스러운 육체를 입는 날, 진정한 잔치가 열릴 것이다.

 함께 가자. 그럼 이만.

 아래 영상은 내가 보기에 이 책의 내용을 따라 만든 시리즈 중 하나인 것 같다. 제목은 다르지만, 내용이 같다.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
국내도서
저자 : 톰 라이트(Nicholas Thomas Wright) / 양혜원 역
출판 : IVP 2009.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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