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말 옆 기린

스캇 맥나이트 '하나님 나라의 비밀' 본문

Topic 2 : Book/2-1 Christian Books

스캇 맥나이트 '하나님 나라의 비밀'

얼룩말 옆 기린 2021. 1. 14.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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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의 비밀
국내도서
저자 : 스캇 맥나이트(Scot McKnight) / 김광남역
출판 : 새물결플러스 2016.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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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서는 ‘하나님 나라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사람들, 즉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수행하는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을 비교하기 시작한다. 일명 스키니진 스타일인 사람들은 복음의 개인적인 구속적 측면을 쉽게 무시하고 사회 정의 구현에 힘을 쏟는다.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일은 사회를 하나님 나라와 같이 아름다운 곳으로 만드는 것이다.

 반면에 정장바지 스타일인 사람들은 복음과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하나님 나라에 깊은 관심을 둔다. 이들은 ‘하나님 나라가 언제, 어디에 임하게 되는가?’라는 물음에 깊이 고민하는데, ‘언제’라는 물음에는 ‘이미’와 ‘아직’이라는 하나님 나라의 특성을 내놓고, ‘어디에’라는 물음에는 하나님 나라는 통치 즉,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백성인 동시에 영역을 가리킨다고 대답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구원하시는 측면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나타나는 곳, 회복과 화해, 치유가 이루어지는 곳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결론은 하나님 나라를 추상적이고 종교적인 차원으로 축소했다.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하나님 나라의 사명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살피기 위해서는 성경이 하나님 나라에 관해 증언하는 것을 살펴야 한다. 이를 위해 A-B-A’ 구조의 성경 이해가 필요하다. A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택하신 사람들을 통하여 세상을 다스리시는 유일한 왕이심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A 이야기에서 인간은 스스로 왕이 되려 하나님을 반역했지만,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며 계속해서 자기 뜻대로 세상을 다스릴 사람을 택하신다. B는 이스라엘 백성은 유일한 왕이신 하나님께 인간 왕을 달라고 구하며 인간 왕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를 찬탈하려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요청을 들어주셨다. 인간 왕의 임무는 하나님의 통치를 이 세상에 실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 왕은 타락하여 욕심에 이끌려 통치한다. A’는 하나님께서 다시 신적 통치를 이루시기 위해 완벽한 왕이신 예수님을 보내시고 예수님은 이스라엘과 교회의 왕이 되신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통치는 종말에 임할 하나님의 나라에서 완성될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사명은 이 이야기에서 제공하는 구속에 참여하여 자기 주권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회심을 이루는 것과 하나님 나라 이야기에 흡수될 정도로 하나님 나라를 정확히 파악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품으신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따라 살 때 유효하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품으신 사명은 무엇인가? 먼저 예수님께서는 당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품었던 그릇된 하나님 나라 비전이라 할 수 있는 지배적인 이야기들과 맞서셨다. 즉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원안인 하나님 나라 비전을 가지고 당대의 지배적인 대안들과 맞서신 것이다.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종말론적인 전투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나타내실 것으로 생각하던 이야기와 맞서셨다. 하나님의 방법이 폭력적이라고 주장하는 문화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섬김을 실천하셨다. 두 번째로 에세네파가 보인 후퇴의 문화를 맞서셨다. 세상과 분리되어 살아가던 문화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따라 세상과 같이 되지 않으면서 세상 속에서 살아가셨다. 세 번째로 예수님께서는 법을 사랑하던 바리새인들이 만들어낸 율법 준수에 대한 열정에 맞서 율법의 핵심인 사랑을 몸소 실천하며 보이셨다. 네 번째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열성을 붙여 폭력을 일삼던 열심당의 급진적인 대안에 충실히 맞서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이어가셨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는 당대 최고 기득권층이었던 사두개인의 정치적인 전략에도 맞서셨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사명이 변혁의 가능성과 관련 없이 신실한 증인의 삶을 사는 것임을 삶으로 보이시며 맞서셨다. 예수님께서 몸소 보이신 삶이 당대에 만연한 문화를 대항했다면 교회 역시 대항 문화적인 공동체여야 한다.

 하나님 나라에 관한 논의를 아는 사람 중 상당수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 나라를 정의구원과 관련짓는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왕에게 다스림을 받는 백성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관해 말씀하실 때 구약에 대한 이해에 따라 영토와 그 영토 안에서 유일한 왕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정의와 사랑, 지혜를 누리며 사는 백성을 염두에 두셨다. 앞서 살펴본 정장바지 스타일의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의 영역을 하나님의 통치영역으로 두며 개인의 구속과 연관시켰으나 하나님 나라의 영역에 있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백성을 빼놓을 수 없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알린 선포에는 왕의 다스림을 받는 대상인 백성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사역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의 특징을 드러내셨다. 교제와 공동체를 떠올리는 포도나무 비유 또는 식탁교제와 같은 비유를 사용하여 하나님 나라를 묘사하셨다. 이런 묘사는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 백성의 교제를 기반한 공동체적 특징을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세상과 구별된 자들이라는 것을 보여주셨다. 마태복음 17:24-27에서는 세상 임금에게 세금을 바치는 일에 관해 말씀하시며 우리라는 단어로 세상 임금의 백성들과 하나님 나라 백성을 구별하고 계신다. , 하나님 나라 백성은 이 세상의 법칙을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법칙을 따라 사는 사람임을 구별하신 것이다. 계속해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믿으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권세를 얻는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자들에게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따를 것과 자신의 증인으로 살 것을 명령하신다. 이로써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믿고 따르며 증언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특징임을 설명하셨다. 그렇다면 이 백성은 누구인가?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대립시켜 왔다. 사실 이 둘은 동의어가 아니다. 그러나 이 둘은 교인이 되지 않고서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수 없을 정도로 긴밀한 관계가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와 교회는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 이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다시 성경을 펼쳐야 한다. 마태복음 16:16-19에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이 등장한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현재의 교회가 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미래에 그의 나라에 하실 일과 연결되어 있다. 본문의 요지는 교회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와 관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신약의 이해를 따라 교회를 본다면, 교회는 대체된 이스라엘이 아니라 확대된 이스라엘이다. 바꾸어 말하면, 교회는 이방인을 포함한 영적 이스라엘, 곧 하나님 나라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본다면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곧 교회의 사명이 된다.

 하나님 나라의 사명인 동시에 교회의 사명은 무엇이 있을까? 먼저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 가운데 거하고자 하심을 생각해 볼 때, 교회의 사명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중재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증언하기 위해 하나님 나라 이야기가 구현된 삶 자체로 증언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왕이신 예수님의 통치 아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정의와 평화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그 뜻이 이루어지는 공동체인 교회를 세워 정의를 실현하는 것과 하나님과 교회 공동체 구성원과 평화를 누리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사명이다. 네 번째로 지역 교회의 교제를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세상을 아름다운 곳으로 만드는 일보다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누리며 살도록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로 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이 땅의 지배 문화에 구애받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어야 한다. 여섯 번째로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 지도자의 지도 아래서 질서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일곱 번째로 교회의 사명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반응으로 공적 영역에서 선을 행하는 것이다. 여덟 번째로 교회의 사명은 예수님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실존을 세상에 증거하여 세상이 교회 안에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교제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아홉 번째는 사회정의 활동, 사회복음, 해방신학으로 곤경에 빠진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베푸는 통로가 되게 하는 것이다. 사회 속에서 선한 일을 하는 것에 목적을 두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사명이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교회에 부으시는 사랑이 교회를 넘어 곤경을 당한 자에게 흘러가도록 사회정의 활동과 사회복음, 해방신학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일이 하나님 나라의 사명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왕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다스린다. 한 나라가 어떠한 나라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주권자가 어떤 자인지 알아보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관찰을 따라 왕이신 예수님께 붙여진 칭호가 무엇인지 살펴본다면 하나님 나라가 어떠한 나라인지 확인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인자라고 부르셨다. ‘인자라는 칭호는 인간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고난과 부활, 재림과 심판을 특징으로 한다. ‘인자라는 칭호는 예수님께서 당하실 고난이 신원을 통해 통치자로 다스리게 될 소명과 잇닿아 있다. 예수를 만난 사람들과 귀신은 예수님께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렀다. ‘하나님의 아들은 다윗이 시편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낳았다고 하신 말씀과 결합하여 이라는 개념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르며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왕이심을 고백한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다니던 제자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 메시아라 고백했다. 제자들은 당대 기대를 따라 로마에게서 이스라엘을 구해내고 부흥시킬 왕, 토라를 준수하게 하여 정의와 평화를 가져올 왕으로서 그리스도라는 칭호를 사용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가르치시고, 부활과 통치에 관해 말씀하신다.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왕이신 예수님께서 누구이신가에 따라 결정되기에 기독론 안에서 사명을 발견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십자가를 포함한 예수님의 모든 이야기를 포용해야 한다. 이때 복음 전도는 변화를 겪게 되는데 우리는 왕이신 예수님을 선포하여 듣는 자가 예수님께서 누구이신가에 대한 의문을 품고 하나님 나라 이야기에 접근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로 죽음을 이기신 사건을 통해 우리의 불의 또한 정복되고 마침내 임할 완전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게 한다.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성육신적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성육신하셨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속을 전하기 위해 타인의 삶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는 우리가 다른 사람이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우리 자아에 관해 죽는 것을 포함한다. 이러한 성육신적인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교회로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 사랑을 누리며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알리는 일을 수반한다. 이처럼 우리는 사랑을 실천할 때 복음의 정수를 드러내게 된다.

 하나님 나라는 구속을 기반한 현실이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구속되고 해방되며 구원을 얻은 백성이다. 이사야 52-53에는 타인을 위해 고난을 겪는 종이 등장한다. 마태는 예수님께서 타인의 고통을 전복시키기 위해 타인의 고통을 짊어지심으로 구속이 일어난다고 증언한다. 즉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죄를 제거하시고 새로운 삶을 주심으로 구속을 이루셨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십자가와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부활로 죄로 인한 곤경을 만난 이들을 구속하신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귀신을 쫓는 일은 하나님의 나라를 예표 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실재하는 하나님 나라 그 자체였다. 하나님 나라의 구속은 악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우주적인 사건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성령의 능력으로 죄의 권세 아래 있는 사람들을 해방하신다. 구속은 교회를 통해 영적 구속과 사회적 구속을 이룬다.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타락한 인간이 죄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 우주적인 마귀의 세력에서 해방되어 십자가의 능력으로 구속을 입는 것, 이러한 구속의 능력을 예수님 안에서 체험하는 공동체를 세우는 일처럼 다차원적인 구속을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는 도덕적 교제를 특징으로 한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삶을 살아가는 구속 공동체이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통치 안에 머물기로 결단하고 헌신해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의 도덕적 교제는 무엇인가? 먼저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는 예수님의 명령처럼 십자가의 삶을 사는 것이다. 십자가를 지는 삶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이는 예수님과 함께하는 공동체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따라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통해 옛 자아의 죽음을 경험해야 한다. 도덕적 교제의 두 번째 특성은 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소금과 빛이라 불러주셨다. 의는 이 세상에서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의미한다. 또한 의는 하나님 나라의 율법을 수여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다. 그 법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의는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보이신 경건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의는 어떠한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최우선이심을 인정하고 헌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도덕적 교제의 세 번째 특성은 사랑이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서 발견할 수 있다. 사랑이 무엇인지 밝혀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출발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시겠다는 언약적인 사랑을 우리에게 보이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 안에서 우리에게 헌신하셨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고 사랑스럽고 순결하게 만드시기 위해 구속하셨고, 우리와 함께 거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실재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만드신다. 이 모든 도덕적 교제의 특성을 놓고 볼 때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십자가와 의와 사랑이라는 특성을 가진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먼저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평화는 구속으로 이루신 평화이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그리고 교회 안에서 평화를 누려야 한다. 그리고 이 세상으로 평화가 자연히 흘러가게 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말을 듣고 따르게 하기 위해 교회를 소환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소금과 빛이 되라고 말씀하신다. 이에 대한 최고의 방법은 교회가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 사는 모습을 세상에 보여 삶으로 증언하는 것이다. 돈과 소유와 관련하여 생각할 때에도 의와 십자가, 사랑이라는 측면을 살펴보아야 한다. ‘는 예수님께 헌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돈과 소유의 문제가 있을 때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헌신해야 한다. ‘십자가는 우리를 구속함과 동시에 삶의 방식의 모범을 제공한다. 다른 이들을 위한 희생을 통한 자기부인을 기억하며 자기를 부인하고 호혜로운 나눔을 통해 곤경에 처한 다른 이들을 돌보며 관대한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 이야기는 이미 출범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것임을 알리고 있다.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은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먼저 그곳에는 평화와 사랑과 기쁨과 풍성함과 안전함 가운데 서로를 축하하며 사귀는 교제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과 함께 계시고 서로를 축하하는 교제의 비전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 비전에는 심판이 있다. 이 세상의 불의를 종결시키시고 완전한 정의가 실현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심판관이 되셔서 순종과 불순종을 심판하시고 벌하시며 그분의 백성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에 대한 상급은 하나님 나라 공동체인 교회에서 누리는 교제와 미래에 완전한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교제이다. 완전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유토피아적인 비전은 예수님을 중심으로한 신정정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소원해 보지 못한 놀라운 통치가 임할 것이다. 그 나라는 예수님께서 영광을 발하는 장엄한 잔치가 열리는 곳이다. 예수님의 통치는 완벽한 정의와 평화 사랑을 기반할 것이다. 완전한 하나님 나라는 복된 곳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예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 순종, 인내를 보이며 왕이신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는 충성된 삶 전제로 한다. 이 복은 현세에서 누리는 측면과 함께 내세적인 측면을 함께 반영한다. 이런 복을 얻은 자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사랑과 거룩이라는 특성이 드러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이 세상의 기준과 달리 박해받는 자, 온유한 자와 같이 자격 없는 이들에게 주어진다.

 식탁 교제를 통해 미래의 완성될 잔치의 풍성함을 누리는 것 또한 하나님 나라의 사명이다. 식탁 교제는 미래의 장엄한 잔치를 현실로 가져오는 일이다. 이 잔치는 모두가 환영받은 포용성이 있으므로 우리도 포용성에 집중한 식탁 교제를 나눠야 한다. 하나님 나라 사명은 심판을 갈망하는 것이다. 죄에 대한 심판과 하나님 나라 질서, 정의에 대한 갈망을 품고 살아가는 동시에 우리에게 용서와 화해를 주신 것을 유념하여 관계 안에서 용서와 화해를 이루며 이곳에서 유토피아를 구체화하려는 과정인 에우토피아를 이루어야 한다. 현재의 교제 안에서도 미래에 누릴 교제의 특성이 드러나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복된 삶을 목표로 한다. 이 땅에서 경험하는 선한 기쁨들은 최종적인 기쁨에 대한 맛보기이다. 하나님께서는 궁극의 기쁨을 주시기 원하시는 분이시다. 그는 복을 주시고자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에게 자신과 타인을 통해 맺을 수 있는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관계를 주셨다. 이 관계를 통해 우리는 연합하게 된다. 참된 하나님 나라의 사명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복됨이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복음, 즉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과의 연합을 통해,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교제를 통해 다른 이들과의 연합을 통해 이 복을 미리 맛볼 수 있다.

 그동안 하나님 나라에 관해 강의를 통해 듣고 책을 통해 읽은 것은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가 하는 정장바지 스타일의 담론이었다. 물론, 이를 접할 때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대와 정체성의 재인식, 하나님 나라 건설에 대한 의지로 감격하지만, 감동은 쉬이 사라지고 삶은 다시 이전의 자리를 되찾는다. 본서를 읽으면서 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졌는지 생각해보았다. 그동안 접했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여러 논의는 추상적이었고,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본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설명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사명 곧,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삶에 관해 기술한다. 하나님 나라의 사명이 무엇인지 성경을 통해 찾다가 다시 묻고 질문에 답하기 위해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는 과정으로 기술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가 무엇이며, 어떠한 나라인지 찾아가는 과정이 이전에 접했던 논의와는 달랐다. 하나님 나라의 왕이 되시는 예수님의 칭호를 통해 그 나라의 특징을 살펴보는 과정은 너무나도 합당하고 신선하다.

 본서에 담긴 논의들은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 나라 백성 간의 관계, 사회와의 관계를 거치며 설명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예배, 교제, 선교라는 교회의 본질에 관해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사회와의 관계에 대한 부분을 접할 때마다 선교에 대한 시각이 변하게 되는데, 본서에서 제시하는 선교 곧 복음을 전하는 일, 사회 속에서 봉사하는 일, 사회 정치에 참여하여 바른 목소리를 내는 일, 사회 운동을 통해 부조리를 바로잡는 일 등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하나님과 성도 간의 교제 속에서 누리는 풍성한 사랑의 넘침이다. 특히 복음을 전하는 일은 하나님 나라가 구현되는 삶을 통해 증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선교에 대한 아름다운 정의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도 추상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이 없는 선교는 하나님 나라의 사명으로서 수행되기보다 하나의 노동으로써 소모적인 활동이 되고 말 것이다. 초대교회의 모습은 본서가 제시하는 선교에 대한 시각이 옳음을 증명한다. 초대교회는 당시 로마문화에 대안적 공동체로서 하나님 나라의 현존을 보여주는 것으로 복음을 전했고, 하나님과 성도 간의 교제에 사랑이 넘쳤다. 결국,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루어진 교회는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또 성도 간의 교제 속에서 사랑을 누리는 것으로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으로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것까지 이루어야 한다.

 본서는 복음 전도의 방법에도 변화를 준다. 앞에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그 나라의 삶을 구현한 모습으로 다가서면서 성도가 언어를 통해 예수님을 전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성도는 불신자에게 초반부터 인간이 죄인임을 제시하며 복음을 전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보다는 왕과 백성에 대한 이야기로 복음을 설명하는 방식은 이전에 전하던 내용을 모두 담으면서도 장엄하고 영광스러운 복음을 잘 드러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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